"죽음으로 항거했던 분들 있기에 민주주의 체제 만들어져"

박종혁

·

2022. 4. 1. 17:35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에 이바지한 5ㆍ18민주화운동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숭고한 애국ㆍ애족정신의 귀감(龜鑑)으로서 항구적으로 존중되고, 그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여 민주유공자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榮譽)로운 생활이 유지ㆍ보장되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  5ㆍ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제 2조(예우의 기본 이념)

 

 보훈은 국가의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나라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뜻 나설 국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싸운 6.25 참전용사들과 518 민주유공자들이 어떤 보상을 바라고 그 일에 참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마땅히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후대가 평가하기에 그들의 공이 충분히 인정된다면 국가 주도로 보상을 해야 당연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면 잊지 않고 보답해야 나라다운 나라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등 크게 아홉 가지 분류를 통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예우하고 있다. 법령을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기 어려운 순국선열의 경우 손자녀까지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그 범위가 정해져 있다. 이 경우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 16조에 의해 순국선열의 손자녀는 취업 시 만점의 10퍼센트의 가점을 받는다. 

 과거에는 독립운동가 혹은 참전용사와 같은 보훈 대상이 전부였다. 그러나 민주화의 이행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사실이 드러나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까지 예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2001년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518 희생자들이 민주유공자로서 최초로 보훈 대상에 포함되었다.(4.19 혁명 관련자는 국가유공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민주유공자로 인정된 건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64년 한일회담반대운동, 1969년 삼선개헌반대운동,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 1989년 전교조결성 해직사건 등 굵직한 민주화운동이 이어졌지만 희생한 이들에 대한 예우는 아직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故 박종철 열사와 故 이한열 열사.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이끈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법적으로 '민주유공자'가 아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분류된다.

 

 민주화운동의 과정에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136명이 사망했고, 693명이 부상을 입었다.(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른 통계, 2019년 12월 기준) 국회 앞에서는 이들 829명의 유가족 일부로 구성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가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829명의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민주유공자'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해달라고 주장했다. 3월 30일 오후 8시 30분, 국회 앞 농성장에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장두영 사무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장두영 사무국장.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 국회 앞에서 191일째 시위를, 175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2022년 3월 31일 기준)

(필자 : 진한 글씨, 장두영 사무국장 : 연한 글씨)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라고 하는, 예전에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비롯해서 권위적인 독재 정부 시절에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해서 싸우다 돌아가신 열사들의 유가족 분들이 만든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장두영이라고 합니다.
 
 지난 1월 9일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신 배은심 여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배은심 여사께서는 마지막까지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애쓰셨는데요. 저도 언론에 그 내용이 나와서 찾아보니까 법 제정을 요구하신 지가 벌써 20년이 넘으셨더라고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제정을 주장하는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요.

 법의 정확한 명칭은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인데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4.19 열사 분들이나, 518 때 돌아가신 분들처럼 국가유공자의 범위로 포함시켜 달라는 게 가장 간단한 정의일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 오랜 시간동안 국회에서 계속 발의는 되었는데요. 법안이라는 게 발의가 되고 나서 소관 상임위가 정해지고, 단계단계를 밟아나가면서 결국 통과가 되는 구조거든요. 그런데 제대로 단계를 밟지를 못했어요. 이른바 시대가 변하고, 중요도에서 점점 밀린 거죠. 어떤 정치적 국면이 있을 때마다 여당과 야당 사이의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국회가 공전하고요. 그러다가 또 국회 끝날 때쯤 되면 선거운동 돌아오고, 그러다 보면 또 법안은 자동폐기되어 있어요. 그다음 국회 때 법을 다시 올려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유가족 분들이 수십 년 상처를 갖고  계신 상태거든요.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민보상법(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라고 해서 일정 정도 이런 활동을 하신 분들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은 부분도 있고,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라는 지위를 얻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 되게 불분명하고 법적으로도 애매한 상태입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명 민보상법이란?

 민보상법은 예우에 관한 법률과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예우에 관한 법률은 보훈의 의미라면, 민보상법은 이름 그대로 보상의 성격이 강합니다. 
 민보상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특멸사면 및 복권 건의나 복직 권고, 학사징계기록 말소 권고 등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뿐 예우에 관련한 내용은 없습니다. 기부 성금으로 마련된 생활지원금이나 보상금과 같은 일부 금전적 지원 내용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이 법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희생된 사람과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명예회복 및 보상을 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 1조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이라고 했을 때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솔직히 그렇잖아요. 누군가 자식이 민주화운동한다고 했었을 때 80년대, 90년대, 혹은 그 이후의 그 어떤 부모도 찬성하고 권장한 사람들은 없잖아요. "아유 다친다", "뒤로 물러서라", "정 하려면 중간 정도만 가라" 이런 게 사실이었잖아요. 지금도 노동운동 한다고 하면 그거 좋아할 사람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적으로 말했을 때. 근데 그 시절에 기꺼이 자기 몸 희생해서 싸워왔던 분들이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의 죽음으로 항거했던 분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가 만들어진 거잖아요. 덕분에 우리 사회의 어떤 민주주의나 노동 문제에 있어서 많은 진전이 있었던 게 사실인데, 그렇게 노력하고 죽어갔던 분들에 대해서 국가유공자라는 틀 안에 담아서 정당한 예우를 해달라는 게 목적인 거죠.

 물론 그 과정에 국가유공자가 되면 몇 가지 지원이 있습니다. 근데 어차피 지금의 대부분 열사들은 젊은 시절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부모님들도 다 연로하시고요. 그 분들이 진학을 하겠습니까, 취업을 하겠습니까. 또 자식들도 별로 없으니까 혜택은 실제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혜택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식의 정당한 활동에 대해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달라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인 거죠.

 저도 이 법 관련해서 찾아보니까요, 이번에 찾아보면서 처음 알게 된 건데요. 이한열 열사라든지 박종철 열사가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식적으로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더라고요.

 네. 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운데 사망자인 거죠. 

 아직까지 4.19 혹은 518 희생자를 제외하면 민주유공자가 없는 거잖아요.

(정확히는 4.19 혁명 참여자는 국가유공자로 분류되어 있다.)

 없는 거죠.

 사실 법 제정에 있어서 오랜 기간동안 공전이 됐던 이유를 생각해보면요, 정치권 그리고 언론에서 법안을 만들 때마다 문제제기하고 나섰던 게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586 특혜법이다", "자기 자식들 진학 혹은 취업에 특혜 주려고 한다"라고 해요. 법안 내용을 보면 물론 그런 내용이 있긴 합니다만 열사들의 유가족들은 거의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렇게 노력해서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

의 유가족들이 그런 혜택을 받아도, 일단 혜택이라고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너무나도 미진한, 때늦은 보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한국 사회가 그 정도의 예우를 못할 정도로 미성숙한 사회도 아니고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런 분들을 예우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혹은 후손들이 의로운 일을 했을 때 그래도 나라가 어느 정도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구나 하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빨리 법이 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뷰 후 : 거리의 사람들은 인터뷰 이후 해당 법안의 국회 정무위원회 검토보고서를 확인했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추가 설명을 덧붙입니다.

< 민주유공자법 제정 시 민주유공자 자녀들의 취업과 진학에 있어서 거의 해당 사항이 없다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주장 >


1. 국가보훈처는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될 경우 재정 지출 대부분이 의료지원과 수송시설이용에 쓰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의료지원 재정이 5년 간 79억 4천3백만 원, 수송시설이용 재정이 8억 1천만 원 소요되어 두 항목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재정의 약 83.5%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료지원과 수송시설이용 항목은 대표적인 고령층 대상 비율이 높은 지출 내용입니다. 

2. 취업에 있어서 가점을 받는다는 내용이 담긴 취업지원 항목이나 교육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교육지원 항목의 법령을 살펴본 결과, <민주유공자법>에서는 국가유공자와 독립유공자 등 다른 보훈대상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제정을 요구하신 법의 내용이 과거와는 약간 변화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9,844분 모두 민주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다가 최근에는 여러 공격들이 있어서 그러셨는지는 몰라도 사망하거나 부상 당하신 분들 혹은 행방불명 되신 829분에 한해서만이라도 법을 제정해달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주장이 바뀐 계기가 있을까요.

 유가족 분들만 하더라도 돌아가시고, 다치시고, 행방불명 되신 분들의 유가족이고요. 거기에 그 시절에 해직되고, 구속되고, 수배 받으면서 고생하고 그런 분들 역시 가정이 파탄나고 생활고로 힘드셨다는 거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마음 같아서는 그 시절에 고생하셨던 분들과 다같이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아서 명예도 회복하고 조금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같이 가는 게 당연히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사망자, 상해자만 포함해달라고 하는데도 국회의원들 만나면 다들 마음은 있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상황이에요.

 

<민주화운동법>에 따른 인정 현황. 현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가 주장하는 민주유공자법으로는 '명예회복'에 해당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예우받을 수 없다.


 방금 말씀하신 분들(유죄 판결 받은 자 혹은 해직 당한 자)을 희생자라 표현하겠습니다, 다 합쳐서. 작년 같은 경우에는 설훈 의원이 그분들까지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이틀인가 사흘만에 바로 철회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일부러 배제한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고려해서, 참으로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돌아가신 분들과 장애 입을 정도로 다친 분들만이라도 먼저 포함해서 물꼬를 트려 한 겁니다. 법이란 게 한 번 제정되고 나면, 개정을 통해서 계속 조금씩 조금씩 보완되거든요. 518 관련 법들도 마찬가지고, 4.3 관련 법들도 마찬가지고요. 그 뒤로는 보완 수정되면서 범위도 넓어졌고 지원도 확대된 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판단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일단 저희가 먼저 가고 나중에 다른 분들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입장입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설훈 의원이 법안을 내니까 "586 셀프보상이다"라는 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난리가 났었죠.(웃음) 난리까지는 아니어도 말이 좀 있었죠.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 어떤 심정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우리가 프레임이라고 하죠. 언론에서 국민들에게 마치 이 법이 특정 세력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매도를 하니까요. 저도 그 때 댓글들을 봤습니다마는 참으로 가슴 아픈 댓글들이 많더라고요. 같은 말을 하더라도 "지금이라도 이런 분들한테 정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라고 전했으면 반응들이 달랐을 텐데 마치 엄청난 특혜가 포함된 것처럼 법안을 표현하니까요. 수많은 비난의 댓글을 보면서 착잡했죠. 슬프고 씁쓸했습니다. 

 

국회 앞에 마련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농성장. 국회를 마주보고 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궁극적으로 바라는 목표 같은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물론 이제 법이 제정되는 걸 가장 바라시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 사회가 민주유공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민주유공자를 인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해보입니다.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말씀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을 배우잖아요. 그 말이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질 때도 있긴 하지만 안될 때가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기에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 했던 분들은 삼대가 망하고 친일파들은 삼대가 호의호식한다고 하잖아요. 독립운동했던 분들의 자손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사는데, 친일청산이 제대로 안되다보니까 오히려 친일파의 후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잘 나가는 모습. 그건 모두가 다 잘못된 거라 생각하고 앞으로의 그런 일들을 막기 위해 다들 애쓰잖아요. 그런데 그런 원칙이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가 다시 한 번 그런 망국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 몸 희생해가면서 나라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다들 주저주저하거나 과거의 선례를 돌이켜보면서 자기를 보신하고 자기 가정 지키려고 더 신경을 쓰겠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조금만 관심을 갖지 못하고 방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당장 몇 년전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과거 독립운동 했던 분들에 대해 제대로 예우하지 못해서 아직까지 많은 부작용이 있는 것을 보고, 과거 민주화운동하다 희생되신 분들에 대해서도 정말 이제라도 미진한 최소한의 보상 예우를 해야지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게 결국 교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라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국회의원 분들도 좀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장두영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