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는 기계나 노예가 아닙니다"

박종혁

·

2021. 8. 11. 23:08

건강했던 이주노동자의 죽음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져 한파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2020년 12월 20일,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 씨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6년 대한민국 입국 당시 건강 검진에서 별 문제가 없었던 그녀의 사인은 바로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체류기간이 종료되는 1월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까지 마련해뒀던 그녀는 30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우리나라의 비숙련 이주노동자는 모두 고용허가제를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온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2004년에 도입됐다. 법 제정 이전에 이주노동자들은 업무를 배우는 연수생 신분으로 일했는데,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사업주는 연수생을 편법으로 활용했고, 임금 체불과 인권 침해 등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고용허가제를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연수생을 두고 있던 많은 기업들은 빈번히 고용허가제를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고용허가제는 어느덧 시행 17년을 맞이했다. 거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진행 중이었다.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용허가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고용허가제란?

정부 사이에 인력 송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국가가 외국인 노동자를 선별하고 도입한다. 사업주는 내국인을 구인하고자 노력해야 하며, 내국인 노동자를 채용하지 못했을 경우 관할 고용센터에 외국인 고용 허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이후 고용허가서가 발급되면, 고용센터 알선이나 면접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16개 나라와 인력 송출 양해각서가 체결되어 있다.

고용허가제의 핵심 내용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 제한'이다. 인력을 보내는 국가와 인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임금 및 근로 조건의 불균형으로 인해 노동자에 대한 수요 억제 장치가 필요한데, 이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실현한 것이다. 이밖에도 이주노동자는 체류기간이 3년으로 제한되어 있고,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재고용하면 체류기간을 1년 10개월 연장할 수 있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인력을 수급하는 국가인 대만과 일본, 싱가포르 등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업장 변경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故 속헹 씨의 숙소 사진. 조립식 판넬로 만들어진 세 개의 방에는 다섯 명의 이주노동자가 함께 살고 있었다. 뒤늦게 속헹 씨를 발견한 동료들은 추위를 피해 다른 곳에 머물고 있었다. [사진 = 이주노동자 숙소 온라인 사진전]

(필자 : 진한 글씨,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 연한 글씨)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주노조 위원장 우다야 라이고요. 국적은 네팔입니다. 이주노조에서 활동한지는 10년 정도 됐고요. 이주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구호로 시위하고 계신데, 그 내용을 설명해주신다면요.

 지금 한국이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도입해서 여러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데려 오고 있고요. 이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사업주한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끔 허가해주는 제도예요. 그래서 이게 모든 권리가 사업주한테 있어요. (이주노동자를) 데리고 오는 거, 또 내보내는 것도 사업주한테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사업장을 그만둘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사업주가 근로 계약을 체결한 기간 동안은 무조건 일해야 한다는 게 고용허가제가 정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아파도,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도, 임금이 적게 나와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어요.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여러 문제들을 겪고 있습니다. 사업주가 노동 착취를 하고, 이렇게 하고 있어요.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없어서 이주노동자들이 무조건 사업주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해요. 사업장 변경할 수 없어서 자살하는 노동자들도 있어요. 이주노동자들도 사업장 변경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노동법에도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한테만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주지 않고요, 기간 연장도 할 수 없어요. 1년 10개월의 기간 연장도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가족 동반도 안 되고.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모든 걸 사업주한테 종속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노예 생활을 하고 있고, 사업주들의 노예가, 기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 우리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를 살펴보면 임금체불이라든지, 노동착취 등 각종 불법 행위나 부조리가 발생했을 때 이주노동자가 직업안정기관에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나와있습니다. 지금의 법 테두리 안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 아닌가요?

 제도적으로만 그렇고요. 그것도, 우리가 사업장 변경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다 하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그게 현실로는 실효성이 없어요. 현실과는 달라요. 이주노동자들이 다 입증해야 해요. 사업주가 부당 노동을 시켰다 하면 입증을 해야 해요.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이주노동자들이 잘 수집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법을) 보여주기 위해만 해주는 거지, 이 법 그대로 사업장 변경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입증하기가 힘들어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예를 들자면, 폭행을 당했어요. 그렇다면 피도 나야 하고 그 장면이 있어야 해요.

 사진이나 동영상이 필요하네요.

 그런 걸 노동자들이 어떻게 찍어요. CCTV는 없는 데도 많고, 사업주가 (CCTV 기록을) 지워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법률은 글씨로만 되어있고,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노동자들한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처음에 노동자들이 입국을 할 때 노동권에 대해서도 그렇고 다양한 교육을 받을 텐데요.

 이런 권리를 잘 안 가르쳐줘요. 사업주 말 제대로 들어야 한다, 일 열심히 해야 한다. 의무만 가르쳐주고 권리를 잘 안 알려줘요. 본국 정부도 똑같고, 한국 정부도 똑같고, 한국산업인력공단도 똑같아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16년 기준 농림어업 종사자 13만 명 가운데 4만 9천 명이 이주노동자입니다. 그러니까 농촌 노동인구의 40% 가까이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는 건데요. 문제는 이 농림어업이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해 근로 시간이나 휴게 시간, 휴일 관련 규정의 예외 업종에 해당합니다. 더욱 애매한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사각지대가 더 늘어날 거고, 지금도 엄청 많아요. 앞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점점 더 농업, 어업 쪽에서 일할 거예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해당 업종에) 없으니까, 이주노동자들만 일하니까 이 근로기준법 63조를 폐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는 국회의원, 정부 사람들이 많아요. 이주노동자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라면 쉴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이건 잊어버려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한테는 안 해줘도 된다는 게 잘못이고, 착각이에요. 이런 잘못된 정책과 생각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로기준법 63조는 폐지해야 하고, 특히 농업 쪽은 기계화가 되어있고요. 근로기준법 63조가 1953년에 만들어진 법이에요. 이게 60년도 지난 법이에요. 그래도 유지하고 있는데,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농촌도 기계화가 다 되었으니까요.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들한테는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63조를 폐지해야 하고, 이주 노동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텐데 한국 사람이 일하지 않을 거니까 폐지하면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은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해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故 속헹 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올 초에 정부에서 몇몇 조치들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열린 이주노동자 숙소 사진전을 보니까 정말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숙소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신다면요.

 오래전부터 비닐하우스 가건물 문제에 대해 요구를 했고,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사람 살 수 있는 건물에 숙소를 줘야 한다"라고 요구를 해왔어요. 그래도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은 거기 살아라", "괜찮다"라고 해서 사람이 죽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숙소가) 아주 춥고요, 난방 장치가 없어서.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더워요.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하고 이런 데들이 많아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서 저녁에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없습니다. 대부분이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서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컨테이너는 숙소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지만, (비닐하우스) 망을 걷으면 컨테이너는 된다고 해요. 망 있는 거랑 없는 것이 똑같아요. 가건물로 지은 거예요. 이게 사람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컨테이너는 아니에요. (그중에는) 농산물 저장 창고도 있고, 원래 점심시간 휴게장소로 쓰이는 곳도 있어요. 자체로 사람 살기 위한 숙소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숙소를) 없애야 한다는 게 저희 요구고요. 사람으로서 우리는 기숙사에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숙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저희 요구예요.

故 속헹 씨의 숙소 사진. 고용노동부가 새로 발표한 개선 지침에 따르면 속헹 씨가 머물렀던 '비닐하우스 내부 가설건축물'은 금지되지만 '비닐하우스가 없는 가설건축물'은 정부의 현장 점검을 통과할 경우 여전히 허용된다. [사진 = 이주노동자 숙소 온라인 사진전]


 조금 전 말씀드렸다시피 故 속헹 씨 사망 이후에 정부가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 허가를 해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담은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 주거 환경 개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주들의 의견이 뭐냐 하면 결국 노동자들도 숙소 비용이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월세가 오르거나 숙소 비용이 오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고 있어요. 사람 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이건 사업주가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숙소비 때문에) 제대로 월급을 못 받는 사람도 있는데, 숙소는 사람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사업주가, 정부가,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예요.

 이주노동자들이 처음 들어올 때 고용허가제 4대 보험을 듭니다. 그중에는 퇴직금 명목의 출국만기보험과 귀국비용보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험금이 3년 동안 미지급된 금액만 132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런 제도가 있는데, 본인들이 이 보험료를 냈는데, 왜 환수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걸까요. 이 정도 금액이면 노동자들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생각될 정도인데요.

 사전 교육이 잘 안된 것도 있고, 이게 받기도 까다로워요.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줘야 하는데, 사업주가 도와줘야 할 수 있는데 잘 안 도와줘요. 알아서 하라는 게 대부분이고. 16개 나라 중에 퇴직금에 대해 오기 전부터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도 엄청 많아요. 받지 못해서 그냥 가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매우 까다로워서 못 받고 가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노동자들에게 여기서 줘야 하는데 출국해서 가야 주는 거예요.

 이 사람들(정부)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주겠다고 해요. 여기 있을 때 줘야지 뭐하러 찾아줘요. 한국에 있을 때 받으면 받기 쉽잖아요. 퇴직금이라는 게 1년 이상 일하면 14일 이내에 줘야 하는 거잖아요. 비행기 가는 순간 주니까, 조금이라도 (서류가) 잘못됐다고 하면 (퇴직금을) 못 받아요. 그 사람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한국처럼 통신이 잘 발달된 나라가 없어요. 근데 똑같이 생각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빼먹기 위해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한국에 있을 때 받는 걸로 바꿔야 해요. (현재 이주노동자에 대한 퇴직금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을 출국한 직후부터 14일 이내에 지급된다.)

 이주노조가 주장하시는 게 노동허가제잖아요. 노동허가제는 고용허가제와 어떻게 다릅니까?

 크게 사업장 변경의 자유, 가족 동반이요. 사업장을 마음대로 계약할 수 있고. 3년으로 되어 있는 걸 없애고, 1년 10개월 연장도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고요. 근로기준법 63조 폐지해야 하고, 퇴직금은 한국에 있을 때 받아야 하는. 이런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봐요. 실시할 때까지 투쟁할 거고, 청와대 앞에서 전국을 돌면서 국회도 가고 하면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볼 거예요.

 고용허가제를 대폭 완화하게 되면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반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거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필요해서 데리고 오는 거잖아요. 한국 사람이 일하고 자리가 없으면 안 들어오죠. (해당 업종에서) 필요해서 데리고 오는 거잖아요. 이주노동자 되기 위한 과정이 이렇게 돼있어요. 먼저 고용주가 (내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구인을 하고 없으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도록 되어있어요. 그런 주장은 이주노동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하는 거지 실제로는 아니에요.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필요에 의해 데리고 왔으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야 해요. 한국이 요새 선진국에 진입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이런 조건이 없이는 선진국에 진입 못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두 얼굴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전수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려서 바이러스 전파자로 낙인찍은 적도 있었고요. 이주노동자만 바이러스 옮기는 사람이고, 이들만 제어하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문제가 생기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는 건 알아요.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거고요. 같은 공장에 다니는 한국 사람들도 있잖아요. 검사 똑같이 받아야 해요. 이런 위기 때도 우리를 차별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이주노조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을 주장하며 주말마다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그는 20년 넘게 한국에서 일해 오며 많은 차별을 겪었다. 생김새가 한국 사람과 비슷한 그는 본인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숙소는 '가설건축물'

 고용노동부가 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 3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0년 기준 69.6%가 가설건축물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 숙소 가운데 조립 패널을 이용한 건축물이 34%, 컨테이너 건축물이 25%, 비닐하우스 안 시설이 10.6%였다. 정부가 속헹 씨 사망 이후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가설건축물축조 신고필증'을 받고, 정부의 현장 점검을 마친 가설건축물은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숙소로 사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속헹 씨가 이용했던 '비닐하우스 내부 가설건축물'은 속헹 씨 사망 이전에도 이미 현행 기준에 어긋난 숙소였다. 건축법 시행령을 보면 가설건축물은 원칙적으로 3년 이내에 철거해야 한다. 가설건축물은 안전점검과 사용승인 과정이 모두 생략된 채 지어진다. 화재와 누전에도 취약하다. 말 그대로 임시 건축물인 것이다.

월세 25만원짜리 비닐하우스 내부 가설건축물 숙소. [사진 = 이주노동자 숙소 온라인 사진전]


 이렇게 열악한 환경과 임금 체불, 폭행 등 각종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임금이 결국 해당 사업주로부터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외치는 이유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권리 교육도 필수다. 보장된 권리가 있어도 행사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사업주로부터의 종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종속 관계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라고 해서 더이상 불법적 관행들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인 노동자와 '값싼 노동력'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도 구시대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 그들도 최저임금과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자다. 그들은 일손이 부족한 업종에 종사하여 그 대가를 받으러 온 것이지, 부조리와 억압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정당한 부조리와 정당한 차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이주노동자 처우 문제를 우리는 정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숙소가 공장 안에 있다. 너무 시끄럽고 화학물질 냄새가 많이 난다.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 몽골 제조업 이주노동자 (이주와인권연구소 실태조사, 2018년)

"월급에서 숙식비를 공제하는데 숙식비는 작년에는 13만원이었는데, 올해부터 25만원으로 올랐다.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쌀만 사다주는데 그 비용을 기숙사비와 함께 공제한다. 방을 혼자 사용하지만 방이 매우 좁아서 불편하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이주와인권연구소 실태조사, 2018년)  

 

 우리나라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처럼, 이주노동자들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았을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겪은 차별과 부조리에 공감했다면,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우다야 라이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